IKARUSs [518458] · MS 2014 · 쪽지

2016-01-05 21:54:45
조회수 4,592

[이카] 생1, "만점까진 안바라고 1등급만 어떻게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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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번 수능에서 45점을 맞았습니다. 분명히 높지는 않은 점수죠.

"흔들리지 않는 만점" 이라던가, "어떤 고난도 문제던 전부 해치워버릴 수 있다" 라는 화려한 수식어가 어울리는 분도 많을텐데, 그런 분들이랑 비교하면 초라한 제가 여기에 글을 쓸 자신감이 나오는 이유는 딱 한가지입니다.

생1은 누구에게나 기회가 열린, 분명 가장 꿀인 과학탐구 과목중 하나라는 것입니다.





이전 글에서도 말했다시피, 실제로 생명에서 우리가 말하는 "헬유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저기 적힌 [세포와 생명의 연속성] 단원의 배점중, 1/3 정도는 유전과 관계없는 개념만을 묻는 것입니다. (ex> 세포 분열 중기의 특성) 또 1/3은 아주 쉬운, 기본적인 유전입니다. (ex> 8번에 나오는 가계도)

개념만 철저하게 알고있어도 우리는 2등급이라는, 충분히 "상대적으로 괜찮은" 점수를 받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물리는 머리아프고 지구과학은 외우기 귀찮아하는 아이들이 생명으로 몰려서 수많은 "개념조차 모르는" 학생들이 들어오거든요. 저희 반에서도, 언수외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중 수능 직전까지 T림프구가 뭐하는 놈인지 헷갈리는 친구들이 생명과학 응시자의 반을 넘었습니다.


하지만, 거꾸로 말하면, 개념을 철저하게 알지 못하면 2등급조차 못맞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유전을 미친듯이 풀고 또 풀고, 시험장에 가서 다 풀어서 맞았는데,

핵 속에 단백질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던지, (2015학년도 9평 2번)
혈관이 조직이라던지, (이번 수능 2번) 

그러면 말짱 꽝인거에요.

원래 생명과학이 시간의 압박을 주어서 정신없게 만들어 실수를 유도하는 더러운 과목이라, 어설프게 개념을 아는 순간 저런 곳에서 "으악!" 하고 당해요. 완전히 안다고 생각하는데도 언제나 틀리는걸요. 그래놓고서는, "허허 내가 왜 저런걸 틀렸지..." 할 뿐.



그런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 제가 했던 방법을 소개해보려고 해요. 물론 생명과학 외의 과목에도 적용할 수 있지만, 특히 생명과학에서 잘 통하는 방법이더라구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오르비에는 프로가 많을거에요. 제가 말하는 방법은 절대로 프로가 되는 법이 아닙니다. 저도 프로가 아닌걸요. 다만, 아마추어가 프로 "흉내" 내는 정도까지는 될 수 있는 방법이에요. 



1. 백지복습

제 과외선생님이 제게 알려주셨던 방법입니다.

정말 간단한 방법입니다. A4용지 한장을 꺼냅니다. 그 위에 생명과학 1에 관련된 개념들을 전부 씁니다. 끝.

 쉬워보이지만, 생명과학을 한번 끝낸 사람이 직접 백지를 가져다 놓고 쓰면 생각보다 까다롭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 개념 썼다가, 저 개념 썼다가. 생명현상의 특성 쓰고, 호르몬 나오고, 질소가 순환하더니 세포주기가 나오고. 그렇게 떠오르는 대로 쓰다보면 무엇이 빠졌는지, 무엇이 중복되었는지 잘 몰라요.

 결국 체계적으로 생명과학을 정리할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애초부터 백지복습을 하기 위해서는 머릿속에 모든 것이 체계적으로 들어있어야 합니다. 만약 체계적이지 않다면, 둥둥 떠다니는 지식을 체계적인 틀 아래에 묶어야죠.

 도대체 그 체계적인 틀이 어디에 있느냐. 거의 모든 생1 책들의 2~4페이지에 있습니다. 바로 목차입니다.

 목차를 외우는 순간 흐름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대단원 명을 외우면 생1의 개괄적인 그림이 보이고, 중단원 명을 외우면 어떤 개념들이 어디에 속하는지 보이기 시작합니다. 거기에, 각 중단원별 키워드까지 첨가하면 세세한 흐름까지도 보이게 됩니다.



 흰 종이 위에 이렇게 써놓고 시작하면, 그 아래에 있는 세부 개념들을 놓칠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개념을 제대로 하지 않은게 아니라면요.



 이렇게 체계적으로 외우는 것은 우선 암기의 효율에 있어서도 명백히 차이가 납니다. 그리고 문제한테 선제공격을 날릴 수 있어요 - 기출 분석자에 한하여. 문제가 나를 때려서 어버버 하는 것이 아니라, 대충 어떤 문제가 나올 지 이미 내 머릿속엔 전부 들어있다! 하고 먼저 치고들어가는거죠. 선빵은 싸움울 제압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2. 조건반사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욕심이 끝이 없지 않아도, 우리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되어있습니다. 특히 탐구에서는. 국어나 영어는 맨날 실수하는 파트가 달라서 도무지 모르겠고, 그조차도 모의고사 하나 풀면 몇개 나오지를 않으니까 패턴을 종잡을 수가 없어요. (영어는 실력때문에 틀릴 수도 있지만, 그건 실수가 아니니까.) 수학은.... 4X0=4 같은 실수는... 음...으음... 신의 저주에요. (간간히 저주에 걸리더군요)

 우리는 실수를 면하기 위해서 오답노트를 작성하고, 왜 틀렸는지 분석합니다.

 근데, 그래도 또 틀려요. 틀릴 확률은 확 줄어들겠죠, 그래도 틀려요. 예를 들어,

 Rr 200마리와 Rr 200마리를 교배했더니 R_ 300마리가 나왔다. 이중 Rr의 개수는?

 이런거에서, 꼭 "음, Rr이랑 RR이랑 두가지 경우의 수가 있으니까 절반, 150마리겠군." 한단 말이에요. 아, 물론 지금처럼 대놓고 물어보면 잘 모르는데, A_B_ddE_ 같은거 줘놓고 확률로 구하라고 하면 슬금슬금 실수가 튀어나와요.

 저런건 정말 틀려도 틀려도 또 틀리더라구요. (읭? 나만 그런가?)

 그래서, 오답노트만으로는 부족함을 깨닫고 새로운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17번 문제에서 멘델의 법칙 문제가 발견되었다.

 'AaBbDdEe.... 1:2:1. 2/3. 1:2:1. 2/3. 1:2:1. 2/3.'

 문제를 보는 순간 바로 머릿속으로 열심히 외우는 겁니다. 문제 옆에 조그마하게 써놓기도 합니다. (참고로, 1:2:1은 RR:Rr:rr, 2/3은 방금같은거에서 1/2가 아니라 2/3을 곱해줘야 한다는거에요.)

 이런식으로 계속 "실수의 가능성"을 의식하고 문제를 풀면 실수를 하지 않더라구요. 근데, 이게 쉽게 될 리가 없죠. "조건반사" 라는 이름처럼 지속적으로 훈련을 해야 합니다. 옆에 리스트를 두고 모의고사를 풀면서 해당하는 문제가 나올 때마다 아까처럼 머릿속으로 실수 할만한 것들을 생각하는 연습을 몇번 하다보면, 어느새 아무 생각 없이 문제만 봐도 딱, 떠오르는 파블로프의 수험생이 완성되는 것이죠.





 유전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안되는 놈들이 존재하더군요 :) 어쩌겠어요, 닥치는대로 잡고 풀어야죠 뭐... 방법이 있나.

 2등급 상위~ 1등급 최상위는 결국 유전싸움이지만, 유전싸움은 반드시 그 이전 단계가 완벽하게 준비된 다음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전 단계들을 저런 방식으로 준비했어요. 그렇게 어떻게든 1등급에 비벼서 들어갔어요. 임상실험(?) 을 통과한, 나쁘지는 않은 방법이에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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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붕 · 411205 · 16/01/05 21:55 · MS 2012

    전적으로 동의함

  • 드라콥 · 640033 · 16/01/05 21:57 · MS 2015

    이번수능은헬유전

  • 샤대가자 · 624554 · 16/01/05 22:01 · MS 2015

    ㄹㅇ핵공감 백지에정리하는방법은 수학이나 사탐공부할때도 도움많이되요진짜... 쭉정리하고 빠진거다시보고 백지에 다시정리하고 하다보면 어느새 개념왕이 되어있음

  • 17서울대생교가자 · 624090 · 16/01/05 22:07 · MS 2015

    생1에서 멘델집단이라는 말을 쓰나요...?

  • IKARUSs · 518458 · 16/01/05 22:09 · MS 2014

    안써요. 그냥 RrRrRrRr 하는 문제 부를 이름이 없어서... "멘델의 법칙 단원 관련 문제" 라고 하기 뭐해서요.

  • 17서울대생교가자 · 624090 · 16/01/05 22:12 · MS 2015

    생2 교과서에서는 하디-바인베르크 평형이 유지되는 집단을 멘델 집단이라 하고 하디-바인베르크 평형은 생물집단 내에서 유전자 빈도가 변하지 않고 대를 거듭해도 유지되는 상태를 일컫습니다. 그래서 혼란이 없게 바꿔주셧으면....ㅎㅎㅎ

  • IKARUSs · 518458 · 16/01/05 22:21 · MS 2014

    알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 17서울대생교가자 · 624090 · 16/01/05 22:13 · MS 2015

    물론 개념 면에서는 아시겠지만... 이글을 읽는 학생들의 혼란 방지를 위해서 바꿔주심이... 명칭을

  • 그래그래잘봐 · 606495 · 16/01/05 22:32 · MS 2015

    생1 교과서5종다보셨나요?? 부담이좀되서..ㅠ 백호샘개념듣고있는데 교과서사야할지 고민이네요..

  • IKARUSs · 518458 · 16/01/05 22:36 · MS 2014

    교과서 하나도 안봤어요... 전 수특파!

  • 그래그래잘봐 · 606495 · 16/01/05 22:39 · MS 2015

    인강개념교재랑 이비에스만 10회독하면 개념은 왕 되겠죠? 물론문풀은따로고

  • 325일의대 · 513462 · 16/01/05 23:02

    님아 제가 생1지1을 하는데요 백호 오지훈 듣습니다
    백지복습법 꼭 해야할것같긴 한데요 제생각에 처음배우는 지금 1~2월은 강의대로 쭉 완강+1회독 제대로 한담에 혼자 2회독할때 백지복습 할려고 생각중인데 좋은생각 맞죠?
    백지복습 매우 귀찮아서 안하려 했는데요.. 님글 읽어보니 목차보고 세부적으로 백지복습해보는건 진짜 좋을것 같네요 .. 근데 개념없는놈이 이렇게하려면 핵심말고 이상한거 쓸수도있고 오개념 정리할수도있고 좀 난감할것같애서 한번 개념돌리고 할려는데 ㄱㅊ?

  • IKARUSs · 518458 · 16/01/06 12:49 · MS 2014

    당연히 개념은 먼저 하시고 해야죠. 그리고 처음엔 옆에 책 가져다놓고 오개념을 정리한건 아닌가 다 체크해봐야해요. 만약 오개념이 발견되면 최소 열번 반복, 안그러면 같은 실수를 하게 되어있어요.

  • 연대치대17 · 511513 · 16/01/06 10:04 · MS 2014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