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르코프스키 [1332076] · MS 2024 (수정됨) · 쪽지

2024-10-13 13: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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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 독서] 삶의 의미에 대한 두가지 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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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얻어갈 개념어들>

결과주의적 의미 이론(consequentialist theories about meaning in life), 복지주의적 삶의 의미 이론(welfarism about meaning in life, WML), 실존적 불안(existential angst)

다원주의적 경향(Pluralistic Tendency), 의미 부여의 조건(Conditions for Bestowing Meaning)

비대칭성(Asymmetry), 존재론적 고민(Ontological concern)

객관적 목록 이론(objective-list theory), 타인의 복지와 삶의 의미(The Welfare and Meaning of Life), 행위자의 책임(Agential Responsibility), 인과적 책임(Causal Responsibility), 다의적 개념(polyvalent concept)



안녕하세요 독서칼럼에 진심인 타르코프스키입니다.

[서론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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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Stevenson, C. M. (2024) Consequentialism, Welfarism, and Meaning in Life. Pacific Philosophical Quarterly, https://doi.org/10.1111/papq.12474


참조 및 재구성.



(연습문제 1)

무엇이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가에 대한 질문은 오랫동안 철학의 주요 주제였다. 결과주의적 의미 이론(consequentialist theories about meaning in life)에 따르면, 삶은 어떤 관련된 사태(state of affairs)를 가져올 때 의미를 부여받는다. 이러한 관점에서 복지주의적 삶의 의미 이론(welfarism about meaning in life, WML)은 삶이 다른 복지 주체(welfare subjects)의 복지를 증진하거나 보호할 때, 그리고 그 정도에 따라서만 의미를 갖는다고 주장한다. 삶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두 가지 접근 방식이 있는데, 하나는 전형적인 사례들(paradigm cases)을 분석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실존적 불안(existential angst)을 고찰하는 것이다. 전형적인 사례란 우리가 직관적으로 가장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삶과 가장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삶의 사례들을 말한다. 의미 있는 삶의 예로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마하트마 간디, 마리 퀴리,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등이 있으며, 무의미한 삶의 예로는 신화 속 시지프스(Sisyphus), 풀을 세는 사람(grass counter), 소파에 앉아 TV만 보는 사람(couch potato) 등이 있다. 이러한 사례들을 통해 공통된 요소를 찾아내고, 우리의 직관을 확인할 수 있다. 의미 있는 삶들은 공통적으로 타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거나 중요한 업적을 남긴 반면, 무의미한 삶들은 개인적인 쾌락이나 무의식적인 반복에 머무른다. 실존적 불안은 우리가 존재의 의문을 느낄 때의 근본적인 걱정으로, 죽음을 앞두거나 삶의 목적을 상실했을 때 나타난다. 문학과 예술 작품들에서 이러한 불안을 다루는데, 예를 들어 뭉크의 '절규', 카뮈의 '이방인', 영화 '버킷 리스트' 등이 있다. 존 스튜어트 밀과 같은 철학자들도 자신의 삶의 의미에 대해 깊은 회의를 품었다. 이러한 실존적 불안은 우리가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죽음 후에 어떤 영향이나 유산을 남길지에 대한 고민과 연결된다. 따라서 삶의 의미에 대한 이론은 이러한 존재적 불안 속에서 나타나는 우려를 포착해야 하며, 그럴수록 그 이론은 더 설득력을 갖게 된다.

<틀린 선택지>
- 실존적 불안은 삶의 의미 이론과 무관하며, 주로 생물학적 요인으로 인해 발생하는 감정이다. 이러한 불안은 철학적 탐구와는 별다른 관련이 없다.
- 결과주의적 의미 이론에 따르면, 개인의 삶은 자신의 쾌락과 만족을 최대화할 때 가장 큰 의미를 가진다고 주장한다.
- 풀을 세는 사람과 소파에 앉아 TV만 보는 사람은 의미 있는 삶의 전형적인 사례로서, 그들은 자신의 방식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
- 마리 퀴리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복지주의적 삶의 의미 이론에서 무의미한 삶의 예시로 자주 언급된다.
- 존재적 불안은 주로 예술과 문학에서만 다루어지며, 실제로 일상적인 삶에서는 거의 경험되지 않는 드문 현상이다.

<힌트>
- 실존적 불안은 생물학적 요인이 아니라 삶의 목적 상실이나 존재의 의문에서 비롯되며, 삶의 의미 이론과 깊은 관련이 있다.
- 결과주의적 의미 이론은 관련된 사태의 결과를 중시하며, 개인의 쾌락보다는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의미를 부여한다.
- 풀을 세는 사람과 소파에 앉아 TV만 보는 사람은 무의미한 삶의 예시로 제시되며, 사회에의 기여보다는 개인적 쾌락에 머무른다.
- 마리 퀴리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의미 있는 삶의 예시로 언급되며, 그들의 업적은 인류에 큰 영향을 미쳤다.
- 존재적 불안은 문학과 예술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나타나는 보편적인 감정으로,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과 연결된다.

<틀린 선택지>
- 결과주의적 의미 이론은 삶의 의미를 평가할 때, 개인의 주관적인 만족보다는 객관적인 성취와 결과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 마리 퀴리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같은 인물들의 삶은 WML에 따르면, 그들의 업적이 사회에 미친 긍정적인 영향 때문에 의미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 신화 속 시지프스는 비록 무의미한 반복적인 행위를 하지만, 그 행위 자체로 다른 사람들의 복지를 증진시킨다면 WML의 관점에서 의미 있는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있다.
- 삶에서 실존적 불안을 느끼는 것은 WML에 부합하는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
- 존 스튜어트 밀은 삶의 의미에 대한 회의를 극복하고, WML에 따라 타인의 복지를 증진하는 삶을 살았다.

<힌트>
- 결과주의적 의미 이론은 삶의 결과가 특정한 상태를 가져올 때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지, 주관적인 만족과 객관적인 성취 중 무엇을 중요시하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다.
- 지문에서 마리 퀴리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의미 있는 삶을 산 이유가 사회 복지 증진 때문이라고 단정하지 않았다.
- 시지프스의 행위는 WML의 관점에서 의미 없는 행위의 예시로 제시되었으며, 다른 사람들의 복지를 증진시킨다는 내용은 지문에 없다.
- 실존적 불안은 삶의 의미에 대한 고민과 연결될 수 있지만, WML에 부합하는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는 아니다.
- 지문에서 존 스튜어트 밀이 삶의 의미에 대한 회의를 극복하고 타인의 복지를 증진하는 삶을 살았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다.

<이 글에서 얻어갈 개념 3가지>

-"결과주의적 의미 이론(consequentialist theories about meaning in life)"은 삶이 어떤 특정한 사태나 결과를 가져올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지게 된다는 관점으로, 이를 통해 삶의 의미는 주로 그 결과가 긍정적이거나 타인에게 유익할 때 부여된다.

-"복지주의적 삶의 의미 이론(welfarism about meaning in life, WML)"은 삶의 의미가 다른 이들의 복지를 증진하거나 보호하는 정도에 달려 있음을 강조하는 이론으로, 이는 개인의 삶이 다른 사람들에게 미친 긍정적 변화와 영향을 통해 가치가 판단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실존적 불안(existential angst)"은 삶의 목적과 존재의 의문에 대해 깊이 고민할 때 느끼는 근본적이고 불안한 감정으로, 이는 작품 '절규'나 '이방인'에서 보듯이 인간이 삶의 유한성과 목적 부족을 직면할 때 자연스럽게 경험하는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연습문제 2)

결과주의적 의미론은 한 개인의 삶이 어떤 관련된 사태(state-of-affairs)에 기여하는 정도에 따라 의미가 부여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의미론은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가치나 사태의 유형(i), 의미를 부여하는 가치나 사태의 수(monism 또는 pluralism)(ii), 그리고 이러한 사태들이 의미를 부여하는 조건(iii)으로 나누어 분석된다. 첫째로,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태나 가치는 도덕적 가치, 성취 가치, 고통과 고난의 제거, 개인의 관심사에 따른 가치, 행복, 지식, 목적적인 활동, 자율성, 연대, 존중, 아름다움 등이 있다. 둘째로, 결과주의적 의미론은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가치의 유형에 대해 다원주의적 경향을 보이며, 이는 주관적 가치와 객관적 선(well-being)이 모두 포함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Bramble은 개인의 존재로 인해 발생하는 주관적 가치와 객관적 선이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고 주장하며, Smuts는 도덕적 가치와 성취 가치를 포함한 광범위한 선의 촉진이 의미를 형성한다고 본다. Thomas는 삶이 중요성-의미(significance-meaning)나 목적-의미(purpose-meaning)를 통해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하며, Railton은 아름다움과 존중과 같은 비쾌락적 내재적 비도덕적 가치의 촉진이 의미를 부여한다고 본다. 셋째로, 결과주의적 의미론은 관련된 사태나 가치가 의미를 부여하는 조건에 제한을 두는데, 단순히 어떤 사태를 촉진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그것이 올바른 조건 하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Bramble은 그 사태가 개인의 존재로 인해 발생해야 함을 강조하고, Smuts는 그 사태에 대해 인과적으로 책임이 있어야 함을 주장하며, Irving Singer는 개인의 가치와 성취가 그 가치를 공유하는 공동체와 연결될 때 의미가 부여된다고 본다. 이러한 결과주의적 의미론은 윤리학에서의 결과주의와는 달리 여러 문제를 회피한다. Metz에 따르면, 윤리적 결과주의는 최선의 결과를 가져와야 한다는 의무를 주장하지만, 의미에 대한 결과주의는 그러한 의무를 지지하지 않는다. 또한 윤리적 결과주의에서 중요한 공평성(impartiality)은 의미에서는 중심적인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윤리적 결과주의에 대한 우려 중 일부는 의미에 대한 결과주의에서는 해당되지 않으며, 결과주의적 의미론은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데 있어 다양한 가치와 조건을 고려함으로써 보다 포괄적이고 현실적인 접근을 제공한다.

<틀린 선택지>
- 결과주의적 의미론은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가치나 사태의 수에 대해 일원주의적 입장을 취하며, 단일한 객관적 선만이 의미를 부여한다고 주장한다.
- Smuts는 개인의 존재로 인해 발생하는 주관적 가치와 객관적 선이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고 주장한다.
- 결과주의적 의미론은 윤리적 결과주의와 마찬가지로 최선의 결과를 가져와야 한다는 의무를 강조하며, 공평성을 중심적인 문제로 삼는다.
- Irving Singer는 개인의 가치와 성취가 그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공동체와 연결될 때 의미가 부여된다고 본다.
- Metz에 따르면 의미에 대한 결과주의는 삶의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단순히 어떤 사태를 촉진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힌트>
- 첫 번째 선택지는 결과주의적 의미론이 가치나 사태의 수에 대해 일원주의적 입장을 취한다고 했지만, 지문에서는 다원주의적 경향을 보인다고 명시되어 있다.
- 두 번째 선택지는 Smuts의 주장을 Bramble의 주장과 혼동하고 있으며, 지문에서 주관적 가치와 객관적 선이 개인의 존재로 인해 발생한다고 주장한 것은 Bramble이다.
- 세 번째 선택지는 결과주의적 의미론이 윤리적 결과주의와 동일하게 최선의 결과를 가져와야 한다는 의무와 공평성을 강조한다고 했지만, 지문에서는 그러한 의무를 지지하지 않으며 공평성이 중심적 문제가 아니라고 명시되어 있다.
- 네 번째 선택지는 Irving Singer의 주장을 반대로 표현하고 있으며, 지문에서는 개인의 가치와 성취가 그 가치를 공유하는 공동체와 연결될 때 의미가 부여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 다섯 번째 선택지는 Metz가 의미에 대한 결과주의가 단순히 어떤 사태를 촉진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주장했다고 하지만, 지문에서는 결과주의적 의미론이 의미를 부여하는 조건에 제한을 두며 단순한 촉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설명하고 있다.

<틀린 선택지>
- 결과주의적 의미론에 따르면, 개인의 삶은 오직 객관적인 선에 기여하는 정도에 따라서만 의미를 갖는다.
- 결과주의적 의미론은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가치나 사태의 유형보다는 그 수를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
- Bramble은 개인의 삶이 객관적인 선에 기여할 때만 의미를 갖는다고 주장하며, 주관적인 가치는 고려하지 않는다.
- Smuts는 개인이 특정 사태에 대해 직접적인 통제력을 행사해야만 의미를 부여받는다고 주장한다.
- 결과주의적 의미론은 윤리학에서의 결과주의와 마찬가지로 공평성을 중요한 문제로 다룬다.

<힌트>
- 결과주의적 의미론은 주관적 가치와 객관적 선 모두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본다.
- 결과주의적 의미론은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가치의 유형에 대해 다원주의적 경향을 보인다.
- Bramble은 개인의 존재로 인해 발생하는 주관적 가치와 객관적 선 모두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고 주장한다.
- Smuts는 개인이 특정 사태에 대해 인과적으로 책임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직접적인 통제력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 결과주의적 의미론에서 공평성은 중심적인 문제가 아니다.

<이 글에서 얻어갈 3가지 개념어>

-"결과주의적 의미론(Consequentialist Semantics)"은 한 개인의 삶이 특정 사태나 가치에 기여하는 정도에 따라 삶의 의미가 부여된다고 바라보는 접근법으로, 이는 삶의 다양한 측면에서 의미가 부여되는 방식을 분석한다.

-"다원주의적 경향(Pluralistic Tendency)"은 결과주의적 의미론이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가치의 유형에 대해 다양한 주관적 가치와 객관적 선을 포용할 수 있음을 나타내며, 예를 들어 개인의 도덕적 성취와 미학적 경험 모두가 삶의 의미를 구성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의미 부여의 조건(Conditions for Bestowing Meaning)"은 특정 사태나 가치가 단순히 촉진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올바른 조건 하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예를 들어 개인의 가치와 성취가 그 가치를 공유하는 공동체와의 연결성을 통해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본다.


(연습문제 3)

의미 있는 삶에 대한 복지주의적 관점은 개인의 삶이 다른 복지 주체들의 복지를 향상, 증진, 보호 또는 유지함으로써 의미를 획득한다고 본다. 이 관점에 따르면, 삶의 의미는 개인이 타인의 복지에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는가에 따라 측정되며, 이는 자신의 복지보다 타인의 복지가 의미 부여에 있어 우선시되는 비대칭성을 지닌다. 예를 들어, 마하트마 간디나 넬슨 만델라와 같은 인물들의 삶이 의미 있다고 평가되는 이유는 그들이 많은 이들의 복지를 크게 개선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이기적이거나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삶은 의미가 결여된 것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비대칭성은 개인의 복지가 아닌 타인의 복지에 기여하는 것이 삶의 의미를 결정한다는 것을 강조하며, 이는 곰으로부터 친구를 희생하여 자신을 구하는 사례에서 친구를 희생하는 것이 삶의 의미를 높이지 않는다는 직관과 일치한다. 또한, 복지주의적 관점은 도덕적 성취, 과학적 발견, 예술적 창조 등이 타인의 복지에 긍정적 영향을 미침으로써 삶의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을 설명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삶이 더 큰 그림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즉 타인과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해하는 존재론적 고민은 이러한 복지주의적 의미관을 통해 해소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개인의 삶이 타인의 복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강조는 의미 있는 삶에 대한 본능적 이해와 부합하며, 복지주의적 관점이 삶의 의미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제공한다.

<틀린 선택지>
- 복지주의적 관점은 개인의 복지가 타인의 복지보다 삶의 의미 부여에 있어 우선시된다는 대칭성을 강조한다.
- 마하트마 간디와 넬슨 만델라의 삶은 그들의 개인적 복지를 향상시켰기 때문에 의미 있다고 평가된다.
- 복지주의적 관점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타인과 세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는다.
- 도덕적 성취나 예술적 창조는 타인의 복지와 무관하게도 삶의 의미를 부여한다고 복지주의는 주장한다.
- 친구를 희생하여 자신을 구하는 행위는 복지주의적 의미관에서 삶의 의미를 높이는 것으로 간주된다.
<힌트>
- 지문에서는 타인의 복지가 개인의 복지보다 우선시되는 '비대칭성'을 강조한다고 하였으므로, 선택지는 이에 반하여 개인의 복지가 우선시된다고 잘못 진술하고 있다.
- 간디와 만델라의 삶이 의미 있다고 평가되는 이유는 그들이 많은 이들의 복지를 크게 개선했기 때문이지, 그들의 개인적 복지를 향상시켰기 때문이 아니다.
- 지문에서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이 타인과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해하는 존재론적 고민을 갖는다고 하였다. 선택지는 이에 반하여 사람들이 그러한 궁금증을 갖지 않는다고 잘못 진술하고 있다.
- 복지주의적 관점은 도덕적 성취나 예술적 창조가 타인의 복지에 긍정적 영향을 미침으로써 삶의 의미를 부여한다고 설명한다. 선택지는 타인의 복지와 무관하게 의미를 부여한다고 잘못 진술하고 있다.
- 지문에서는 친구를 희생하여 자신을 구하는 행위가 삶의 의미를 높이지 않는다고 하였다. 선택지는 이에 반하여 그러한 행위가 삶의 의미를 높인다고 잘못 진술하고 있다.

<틀린 선택지>
- 의미 있는 삶에 대한 복지주의적 관점은 개인의 행복과 타인의 행복 사이의 균형을 강조하며, 개인은 자신의 복지와 타인의 복지를 동등하게 고려해야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 복지주의적 관점에 따르면,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삶은 항상 의미가 결여된 것으로 간주되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
- 마하트마 간디나 넬슨 만델라와 같은 인물들의 삶은 그들의 뛰어난 업적과 더불어 개인적인 행복을 동시에 성취했기 때문에 의미 있다고 평가된다.
- 복지주의적 관점은 예술적 창조 활동이 개인의 내면세계를 표현하고 탐구하는 행위라는 점을 강조하며, 이를 통해 개인은 자기실현을 달성하고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고 본다.
- 개인의 삶이 타인의 복지에 미치는 영향은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측정 가능하며, 이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가치 판단을 제공한다.

<힌트>
- 지문에서는 타인의 복지가 개인의 복지보다 우선시된다고 언급했으므로, 균형을 강조하는 것은 본문의 내용과 부합하지 않는다.
- 지문에서는 이기적이거나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삶이 의미가 결여된 것으로 간주된다고 했지만, 어떠한 상황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 지문에서는 간디나 만델라의 개인적인 행복에 대한 언급은 없으며, 오로지 타인의 복지를 개선했기 때문에 의미 있는 삶으로 평가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 복지주의적 관점에서 예술적 창조는 타인의 복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이지, 개인의 내면세계 표현이나 자기실현과는 무관하다.
- 지문에서는 개인의 삶이 타인의 복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객관적인 측정 기준이나 동일한 가치 판단에 대한 언급이 없다.

<이 글에서 얻어갈 개념 3가지>  
- "비대칭성(Asymmetry)"은 개인의 복지보다 타인의 복지가 삶의 의미 부여에서 우선시되는 현상으로, 곰으로부터 친구를 희생하여 자신을 구하는 경우가 삶의 의미를 높이지 않는다는 직관으로 설명될 수 있다.  
- "존재론적 고민(Ontological concern)"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이 더 큰 그림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를 궁금해하는 심리적 상태로, 이러한 고민은 개인이 타인과 세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복지주의적 의미관을 통해 해소될 수 있다.  
- "복지주의적 관점(Welfarist Perspective)"은 개인의 삶이 다른 사람들의 복지를 향상시키는 데 기여함으로써 의미를 얻는다는 관점으로, 마하트마 간디나 넬슨 만델라처럼 타인의 복지를 크게 개선한 인물들의 삶이 의미 있다고 평가되는 이유를 설명한다.




(연습문제 4)


삶의 의미에 대한 복지주의(Welfarism about Meaning in Life, WML)는 타인의 복지를 증진하고 보호하는 것만이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결과주의 이론은 다원주의적 관점을 취하며, 다양한 가치들이 삶의 의미를 구성할 수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마리 퀴리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 J.R.R. 톨킨과 같은 인물들의 삶은 그들이 각자의 분야에 기여했기 때문에 의미 있다고 여겨지지, 반드시 타인의 복지에 대한 영향 때문은 아니다. 따라서 오직 타인의 복지를 증진하거나 보호하는 것만이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WML의 주장은 의문을 제기한다. 이에 대해 WML은 그들의 기여가 본질적으로 가치가 있을 수 있지만, 그 기여가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정도는 결국 그 기여가 타인의 복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정도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복지가 무엇을 구성하는지, 그리고 기여로 인한 복지의 변화가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지식은 복지의 중요한 요소로 간주되며, 객관적 목록 이론(objective-list theory), 쾌락주의(hedonism), 욕구 이론(desire theory), 완전주의(perfectionism) 등의 이론에서 지식이 복지에 기여하는 방식을 설명한다. 아인슈타인이나 퀴리의 발견은 지식의 예시로서, 사람들의 세계 이해를 확장하고 오류를 식별하게 하여 복지를 증진시킨다. 그러므로 그들의 기여가 각자의 분야에만 국한되더라도, 그것이 타인의 복지를 향상시킴으로써 그들의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한편, 어떤 이는 기여나 영향이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데 필요하다는 주장 자체를 거부하고, 예술가나 과학자의 성취나 발견만으로도 삶이 의미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삶의 프로젝트의 가치와 그것이 삶에 부여하는 의미를 비교 판단함으로써 이 반론을 분석할 수 있다. 모차르트와 데릭의 사례를 생각해 보자. 모차르트는 성공적이고 영향력 있는 음악가로서 그의 작품은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미적 경험을 주었고 음악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반면 데릭은 모차르트와 동일한 음악을 작곡했지만, 그의 작품은 아무도 듣지 못했고 역사에 남지 않았다. 둘 다 동일한 예술적 성취를 이루었지만, 우리는 모차르트의 삶을 매우 의미 있다고 여기고 데릭의 삶은 그렇지 않다고 판단한다. 이는 모차르트의 삶이 타인의 복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며, 따라서 삶의 의미는 타인의 복지에 대한 영향에 달려 있다는 것이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이다. 따라서 WML은 삶의 의미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여전히 유효하며, 타인의 복지를 증진하고 보호하는 것이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틀린 선택지>
WML은 예술가나 과학자의 성취가 타인의 복지에 기여하지 않더라도, 그 성취의 내재적 가치로 인해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고 주장한다.
객관적 목록 이론이나 쾌락주의, 욕구 이론 등은 지식이 복지에 기여하지 않으며, 복지의 구성 요소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대부분의 결과주의 이론은 삶의 의미를 단일한 가치만으로 설명하며, 다양한 가치들을 인정하는 다원주의적 관점을 취하지 않는다.
데릭의 삶은 그의 음악이 알려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술적 성취를 이루었으므로 모차르트의 삶과 동일한 의미를 가진다고 평가된다.
마리 퀴리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발견은 사람들의 세계 이해를 확장하지 못하여, 복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힌트>
WML은 개인의 성취가 타인의 복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야만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고 주장한다.
객관적 목록 이론이나 쾌락주의 등은 지식이 복지에 기여하는 방식을 설명하며, 지식을 복지의 중요한 요소로 간주한다.
대부분의 결과주의 이론은 다양한 가치들이 삶의 의미를 구성할 수 있다고 보는 다원주의적 관점을 취한다.
데릭의 삶은 타인의 복지에 영향이 없었기 때문에, 모차르트의 삶보다 덜 의미 있다고 판단된다.
퀴리와 아인슈타인의 발견은 사람들의 세계 이해를 확장하여 복지를 증진시켰다.

<틀린 선택지>
- 결과주의 이론은 WML과 마찬가지로 타인의 복지 증진만을 삶의 의미로 간주하는 단일주의적 관점을 취한다.
- 객관적 목록 이론, 쾌락주의, 욕구 이론, 완전주의는 모두 지식이 복지에 기여하는 방식을 동일하게 설명한다.
- 아인슈타인이나 퀴리의 발견은 그들의 분야에만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WML에 따라 삶의 의미를 부여하지 못한다.
- 예술가나 과학자의 성취나 발견만으로 삶의 의미가 충족된다는 주장은 WML의 핵심 논지를 강화한다.
- 모차르트와 데릭의 사례는 예술적 성취 자체가 삶의 의미를 결정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례이다.

<힌트>
- 결과주의 이론은 오히려 다원주의적 관점을 취하며, WML과 대조된다.
- 객관적 목록 이론, 쾌락주의, 욕구 이론, 완전주의는 각자 다른 방식으로 지식이 복지에 기여하는 방식을 설명한다.
- 아인슈타인이나 퀴리의 발견은 지식을 통해 타인의 복지에 기여했기 때문에 WML에 따라 삶의 의미를 지닌다.
- 예술가나 과학자의 성취나 발견만으로 삶의 의미가 충족된다는 주장은 WML에 대한 반론이며, WML은 이에 대한 반박을 제시한다.
- 모차르트와 데릭의 사례는 동일한 예술적 성취를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복지에 미친 영향에 따라 삶의 의미가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WML을 지지하는 사례이다.

<이 글에서 얻어갈 개념 3가지>

-"객관적 목록 이론(objective-list theory)"은 삶의 의미를 특정 기준에 따라 구성하는 요소들의 목록을 통해 평가하는 이론으로, 예를 들어 지식, 미적 경험, 윤리적 성취 등과 같이 객관적으로 가치 있는 것들을 포함한다.

-"결과주의적 다원주의(Consequentialist Pluralism)"는 다양한 가치들이 삶의 결과와 의미를 구성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론으로, 이는 삶의 의미가 오로지 단일 가치에 의해서만 결정되지 않고 다수의 가치들이 상호작용하여 형성될 수 있음을 나타낸다.

-"복지주의(Welfarism)"는 삶의 의미가 타인의 복지를 증진하거나 보호하는 데에서 비롯된다는 이론으로, 모차르트의 음악이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그의 삶이 더 의미 있다고 여겨진다는 예시로 설명될 수 있다.



(연습문제 5)


다원주의(pluralism)는 성취 가치(achievement value), 객관적 가치(objective value), 창조적 프로젝트 등 다양한 요소들이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러한 요소가 타인의 복지(welfare)와 연관되지 않는다면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반론이 제기된다. 예를 들어, 한 북극 과학자가 평생을 북극에서 데이터를 수집하고 연구 결과를 본국에 전달하는 데 헌신하였으나, 첫날 발생한 폭풍으로 인해 송신기가 손상되어 모든 데이터가 전달되지 못했다면 그의 삶은 의미가 있는가? 그의 업적과 창의성이 가치 있다고 해도, 그 작업이 타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면 그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예시는 개인의 활동이 타인의 복지와 접점이 없을 때 그 활동이 삶에 의미를 부여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그 과학자가 자신의 노력이 헛되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 느낄 상실감은 그의 노력이 타인에게 영향을 주어야 의미가 있다고 스스로도 인정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따라서 예술적 프로젝트나 과학적 발견이 가치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활동이 삶에 의미를 부여하려면 타인의 복지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관련된 상태는 오직 타인의 복지이며, 이것이 유일한 요소라는 주장이 제시된다. 이때 타인의 복지가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조건에 대해 행위자의 책임(agential responsibility)과 인과적 책임(causal responsibility)이 논의된다. 행위자의 책임은 의미 있는 삶이 단순한 결과뿐 아니라 행위자의 직접적인 노력과 참여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며, 인과적 책임은 결과를 가져오는 인과적 연결에 대한 책임을 의미한다. 노직(Nozick)의 '결과 기계(result machine)'는 원하는 결과를 생성하지만 과정에서 행위자의 참여나 노력이 없으므로, 이러한 기계에 의존한 삶은 의미가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고 실험이다. 메츠(Metz)는 최대한의 의미 있는 삶은 노력과 직접적인 활동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설명하며, Oxfam에 기부금을 보내는 것과 현장에서 직접 봉사하는 것을 비교하여 후자가 더 의미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브램블(Bramble)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없는 선한 기여라고 반박하지만, 이는 누구라도 대신할 수 있는 올림픽 금메달 획득의 예시에서 직관에 반한다. 우리는 금메달 획득이 의미 있다고 느끼며, 다른 사람이 대신할 가능성은 중요하지 않다. 또한,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예시에서 어려움의 정도가 삶의 의미를 결정하지 않는다는 점이 드러난다. 모차르트는 음악 작곡이 쉬웠고, 베토벤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들의 삶의 의미는 노력의 난이도에 따른 것이 아니다. 따라서 어려움이 의미를 증가시키지 않는다면, 의미는 타인의 복지에 미치는 영향에 의해 결정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틀린 선택지>
- 다원주의는 개인의 창조적 프로젝트가 타인의 복지와 무관하더라도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고 주장한다.
- 노직의 '결과 기계'는 행위자의 참여 없이도 의미 있는 삶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 메츠는 최대한의 의미 있는 삶은 결과만을 중시하며 노력과 직접적인 활동은 중요하지 않다고 설명한다.
- 브램블은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없는 어려운 업적이 삶의 의미를 결정한다고 주장한다.
-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예시는 어려움의 정도가 삶의 의미를 증가시킨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준다.

<힌트>
- 다원주의는 타인의 복지와 연관되지 않는 요소들은 삶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고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 노직의 '결과 기계'는 행위자의 참여나 노력이 없는 결과는 의미가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고 실험이다.
- 메츠는 노력과 직접적인 활동을 통해 이루어진 삶이 최대한으로 의미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 브램블은 어려움의 정도가 아닌 타인의 복지에 미치는 선한 기여가 삶의 의미를 결정한다고 반박한다.
-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예시는 어려움의 정도가 삶의 의미를 결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틀린 선택지>
- 다원주의는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요소로 성취 가치, 객관적 가치, 창조적 프로젝트 등을 제시하며, 이러한 요소들은 타인의 복지와의 연관성을 전제로 한다.
- 북극 과학자의 예시는 개인의 활동이 타인에게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이 없더라도,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닐 수 있음을 보여준다.
-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요소로서 타인의 복지에 대한 논의에서, 행위자의 책임은 결과의 윤리적 정당성을 강조하는 반면, 인과적 책임은 행위의 동기를 중시한다.
- 결과 기계 사고 실험은 개인의 노력과 헌신이 결여된 결과는 의미를 창출할 수 없다는 점을 시사하며, 이는 타인의 복지에 대한 직접적인 개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 브램블은 의미 있는 삶이란 타인이 대신할 수 없는 고유한 기여를 통해 가능하다고 주장하며, 이는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예시처럼 창조적 결과물의 독창성을 강조하는 관점이다.

<힌트>
- 다원주의는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인정하지만, 지문에서는 이러한 요소들이 타인의 복지와 무관하게 의미를 지닐 수 있는지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다.
- 북극 과학자의 예시는 오히려 개인의 활동이 타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할 때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례이다.
- 행위자의 책임은 행위의 동기나 의도를, 인과적 책임은 행위의 결과를 중시하는 개념이 아니라,  행위자의 직접적인 노력과 참여를 강조하는 개념이고, 인과적 책임은 결과를 가져오는 인과적 연결에 대한 책임을 의미한다.
- 결과 기계 사고 실험은 타인의 복지에 대한 직접적인 개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결과를 얻었더라도 행위자의 참여와 노력이 없다면 의미를 느끼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 브램블의 주장은 창조적 결과물의 독창성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행위만이 의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예시는 어려움의 정도가 삶의 의미를 결정짓는 요소가 아님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 글에서 얻어갈 개념 3가지>

-"타인의 복지와 삶의 의미(The Welfare and Meaning of Life)"는 개인의 성취나 창조적 노력 그 자체만으로는 삶의 의미를 충분히 정의할 수 없고, 그 활동이 타인의 복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때 비로소 의미 있는 삶이 된다는 철학적 주장이다. 예를 들어, 북극 과학자가 데이터를 수집하여 과학적 발견에 기여하지 못할 경우, 그의 삶의 가치와 의미는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으로 평가된다.

-"행위자의 책임(Agential Responsibility)"은 의미 있는 삶의 조건으로 행위자의 직접적인 노력과 참여를 강조하는 개념으로, 이는 결과의 단순한 성취보다 그 과정에서 얼마만큼의 개인적 헌신과 역할이 있었는지를 중요하게 고려한다. 예를 들어, Oxfam에 기부금을 보내는 것보다 직접 현장에서 봉사하는 것이 더 의미 있다고 보는 관점에서 이러한 책임의 중요성을 이해할 수 있다.

-"인과적 책임(Causal Responsibility)"은 그 결과를 가져온 인과적 연결망에 대한 책임을 지는 개념으로서, 행동의 결과가 타인의 복지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과 정도를 설명하는 데 사용된다. 결과 기계의 사고 실험에서는 과정에서 개인의 참여 없이 결과만을 추구하는 삶이 왜 부족한 의미를 가지는지를 통해 인과적 책임의 필요성을 시사한다.



(연습문제 6)



삶의 의미에 대한 논쟁에서 '삶의 의미에 관한 복지주의(Welfarism about Meaning in Life, WML)'는 개인이 타인의 복지를 증진하거나 보호함으로써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고 주장하며, 가장 설득력 있는 이론으로 제시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보상과 처벌이 개인의 노력과 공정하게 비례해야 한다는 강한 직관을 갖고 있으며, 이는 노동과 노력을 통해서만 삶의 의미가 '얻어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의미가 반드시 개인의 노동량이나 노력과 비례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며, 이는 의미가 꼭 '받을 자격이 있는(deserve)' 것인가 하는 문제를 도출한다. 이에 대해 Smuts(2018)는 개인이 어떤 관련된 상태를 발생시키는 인과적 책임(causal responsibility)을 가질 때 그 삶에 의미가 부여된다고 주장하지만, 그는 인과성을 협소하게 정의하여 의미 부여의 범위를 제한한다. 그러나 히틀러의 사례에서 보듯이, 그의 삶은 직접적인 인과적 행위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도 계속되는 영향으로 인해 그의 삶의 의미에 영향을 미치며, 이는 협소한 인과적 책임을 넘어서는 요소들이 삶의 의미를 부여하거나 빼앗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의미라는 개념이 단일하고 일관된 개념인지, 아니면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다의적(polyvalent)인 개념인지에 대한 논쟁이 있다. 일부 학자들은 의미가 상황에 따라 변하는 불안정한 개념의 집합체라고 주장하지만, 히틀러와 넬슨 만델라의 삶을 비교할 때 이러한 관점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히틀러의 삶은 목적성(purposefulness)과 중요성(significance)을 지니지만, 의미 있는 삶으로 간주되지 않으며, 이는 의미가 목적성이나 중요성과는 별개의 독립적인 평가 개념임을 시사한다. Metz는 WML이 타인의 복지를 증진할 때 언제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지 명확히 구별하지 않아 반직관적인 결과를 초래한다고 비판하며, '굴욕(Humiliation)'과 '매춘(Prostitution)'의 사례를 제시한다. 이 사례에서 개인은 타인의 복지를 향상시키지만, 그들의 삶이 의미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WML은 복지(Well-being)에 대한 다양한 이론이 복지의 구성 요소를 다르게 정의하기 때문에 이러한 비판을 피할 수 있다. 일부 이론에서는 쾌락이나 행복이 복지의 핵심이라고 보지만, 객관적 목록 이론(objective-list theory)이나 완전주의(perfectionism) 이론에서는 복지를 다른 방식으로 정의한다. 따라서 굴욕이나 매춘과 같은 행위가 타인의 복지를 증진한다고 해도, 그것이 반드시 의미 있는 삶에 기여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우리가 도덕적이거나 신중한 이유로 그러한 행위를 피할 수 있지만, 이는 그 행위가 삶에 의미를 부여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결국 WML은 삶의 의미에 관한 이론 중 가장 그럴듯하고 설득력 있는 이론으로 남게 되며, 타인의 복지를 증진하는 것이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핵심 요소임을 강조한다.

<틀린 선택지>
- 삶의 의미에 관한 복지주의(WML)는 개인의 노력과 노동량이 삶의 의미를 결정한다고 주장한다.
- Smuts는 개인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인과적 책임이 아닌 결과의 규모라고 강조했다.
- Metz는 WML이 굴욕과 매춘의 사례를 통해 삶의 의미 부여를 명확히 구별한다고 칭찬했다.
- 히틀러의 삶은 목적성과 중요성이 부족하여 의미 있는 삶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 일부 학자들은 의미가 단일하고 일관된 개념이며 상황에 따라 변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힌트>
- WML은 개인의 노력과 노동량이 아니라 타인의 복지를 증진하거나 보호함으로써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고 주장한다.
- Smuts는 인과적 책임을 삶의 의미 부여의 핵심으로 보았지만, 결과의 규모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 Metz는 WML이 삶의 의미 부여를 명확히 구별하지 않아 반직관적인 결과를 초래한다고 비판했다.
- 히틀러의 삶은 목적성과 중요성을 지니지만, 이러한 요소에도 불구하고 의미 있는 삶으로 간주되지 않는다고 언급되었다.
- 일부 학자들은 의미가 상황에 따라 변하는 다의적 개념이라고 주장하며, 의미의 불안정성을 강조했다.

<틀린 선택지>
- Smuts(2018)는 개인의 삶의 의미는 타인의 복지 증진 여부와 관계없이 오직 스스로의 노력과 성취를 통해서만 확립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 히틀러의 사례는 목적성과 중요성을 갖는 삶이 반드시 의미 있는 삶과 일치하지 않으며, 오히려 개인의 쾌락이나 행복이 삶의 의미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임을 보여준다.
- 삶의 의미에 대한 다원주의적 관점은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의미를 평가할 수 없기 때문에, Metz의 굴욕과 매춘 사례에 대한 비판을 효과적으로 반박할 수 있다.
- WML에 대한 비판 중 하나는 삶의 의미가 개인의 인과적 행위에 의해서만 결정된다는 협소한 관점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 객관적 목록 이론이나 완전주의 이론과 같은 복지 이론들은 쾌락이나 행복을 복지의 핵심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타인의 복지를 증진하는 행위가 반드시 삶의 의미로 이어진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힌트>
- Smuts(2018)는 개인이 타인의 복지 증진에 인과적 책임을 가질 때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하며, 이는 개인의 노력과 성취만을 강조하는 것과는 다르다.
- 히틀러의 사례는 목적성과 중요성을 가진 삶이라도 의미 있는 삶과 다를 수 있음을 보여주지만, 쾌락이나 행복이 삶의 의미를 결정짓는다는 주장의 근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 삶의 의미에 대한 다원주의적 관점은 히틀러와 넬슨 만델라의 사례 비교를 통해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비판받으며, Metz의 비판에 대한 직접적인 반박으로 제시되지 않는다.
- WML은 삶의 의미가 타인의 복지 증진과 관련된다고 주장하며, 이는 개인의 인과적 행위에 국한되지 않는다.
- 객관적 목록 이론이나 완전주의 이론은 복지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제시하지만, 쾌락이나 행복을 배제하는 것이 타인의 복지 증진과 삶의 의미 사이의 연결을 약화시킨다는 주장은 지문에서 찾아볼 수 없다.

<이 글에서 얻어갈 개념 3가지>

-"삶의 의미에 관한 복지주의(Welfarism about Meaning in Life, WML)"는 타인의 복지를 증진하거나 보호하는 것이 개인의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고 주장하며, 이론이 제시하는 핵심은 인과적 책임을 통한 의미 찾기이다.
 
-"인과적 책임(causal responsibility)"은 개인이 특정 상태를 발생시키거나 영향을 미치는 방법으로, 예를 들어 히틀러의 행위가 그의 삶에 지속적인 의미를 부여하거나 빼앗는 것처럼, 행위의 직접적 결과뿐만 아니라 사회와 역사에 미치는 연쇄적 영향을 고려한다.
 
-"다의적 개념(polyvalent concept)"은 의미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불안정한 개념의 집합체로, 히틀러와 넬슨 만델라의 삶을 비교할 때 나타나는 의미의 복합성과 다양성을 설명하는 데 유용하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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