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ndaceFlynn [362149] · MS 2010 · 쪽지

2015-11-15 03:50:01
조회수 7,372

나를 포함, 장수생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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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마지막 수능을 보고 쓰는 글.
함께 공유하고 싶어서 여기에 올려봅니다.

아, 마지막 수능이라고 했지만 잘 봐서는 아닙니다...
올해 삼반수를 했고, 결과적으론 망했습니다. 복학 확ㅋ정ㅋ


삼세번 다 실전에서 이상하리만치 삐끗하는 걸 보면
난 정말이지 태생적으로 시험과는 철천지 원수지간인 것인가도 싶네요.

고생 끝에 빛 본 N수생도 있겠고,
그런 분들에겐 진심으로 축하를 드리지만...
제가 그렇듯, 오랜 시간을 투자한 만큼
더 비참하고 허무한 심정의 N수생들도 많을 것 같아요.

채점 후 모니터 앞에서 억장이 무너지는 그 심정.
그것은 슬픔도 분노도 아니었습니다.
허무함과 막막함, 결국 안 되는 것인가, 하는 무력감.
이쯤 되면 단순히 점수 몇 점 아까워 슬픈 게 아니고,
차라리 어떤 거대한 운명 앞에서 굴복되는 인간의 느낌...

노력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고 누가 그러던가.
최선을 다하면 안 되는 건 없다고 대체 어떤 새1끼가 그러던가.
참 오래도 공들인 탑이 한순간에 무너져버릴 때,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 마구 반박하고 싶어집니다.


이제 이런 상황마저도 익숙하다는 게 참 씁쓸한데...
이렇게 절망적이어도, 어떻게든 지나가고 또 무뎌지겠죠.
늘 그랬듯이 말입니다.

전 낙천적인 사람은 아닙니다. 희망을 파는 사람들을 믿지 않습니다.
N수를 거치며 더 그렇게 된 것도 있고...
그런데도 결국 이런 상황에서는,
이런 바닥까지 맛보는 순간에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네요.

지금 노력한 것들이 언젠가는 돌아올 거다.
당장은 안 보여도 언젠가는 좋은 방식으로 돌아올 거다...
합리화처럼 보여도, 그러는 수밖에 없죠.


그래도 저는 최소한, 이 시절을 허투루 생각 없이 보내지는 않았습니다.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 보았고, 그 앞에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했고,
남들보다 오랜 시간동안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노력해 보았습니다.
저는 끈기를 가지고 주어진 나날을 성실하게 보냈습니다. 확실합니다.

그러니까, 흔하디 흔한 말이지만 이 모든 게 더 큰 일을 위한 밑거름이 될 거라고,
저는 그렇게 믿어보겠습니다. 여러분에게도 그러리라 믿습니다.

열심히 한 N수생들이라면,
결과를 떠나 그 노력과 인내의 힘을 자신이 제일 잘 알 겁니다.
알 속에서 기다리고 또 갈고닦던 그 긴 시간이
결코 낭비가 아니었음을 보여줍시다.

그 어떤 대학 이름보다 우리는 더 큰 이름이 됩시다.
훗날 더 빛나는 자리에서 만나기를.
그때는 이 시간을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게 되기를.


그리고 가장 중요한 바람.
우리 모두 이제는 행복해지기를... 진심으로 정말 진심으로 바라요.
정신없이 달려오다가 이제 와 문득 돌이켜보니,
수능에 매달리다 놓친 게 너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수험생이랍시고 맘 놓고 놀아보지도 못한 게 어언 3년째.
20대 초반을 오로지 시험에 대한 불안과 긴장 속에서 허우적대며 보낸 것 같아
한 순간도 시험 걱정일랑 없이 마음 편히 보낸 적이 없는 것 같아
무엇보다 제 자신에게 너무 미안합니다.

그동안 못 했던 것들, 참았던 것들, 일단은 시원하게 해 봐요.
유예해온 청춘을 이제는 시작합시다.

그리고 꼭 행복하세요.
아... 정말 이 흔한 한 마디가 그렇게 사무치는 말인 줄 미처 몰랐습니다.

내 자신에게도 꼭 말해주고 싶네요.
이제는 반드시 행복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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