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봐주으앙ㅡ아직도 기억에 남는 초교 시절의 투표
당시 4학년 이었던걸로 기억한다. 담임선생님은 서울교대를 나오신 똑똑하신분이었고, 선생님 또한 교사에 대한 프라이드가 상당하셨었다. 우리학교 최고 인기선생님중 하나였는데, 그 이유는 그때 유행하던 스타크래프트를 매우 잘하며..간간히 슬램덩크와 같은 유익한(?) 애니들을 자주 보여줬기 때문이다. 말을 재치있게 하시고 간간히 뿜어져나오는 카리스마 또한 인기요인!
그날은 반장선거가 있는 날이었다. 아무래도 수업을 안하니까 친구들과 키득키득 거리며 , 투표를 기다리는데. 지루함을 탈피하고자 했던 나의 심술이 심각한 분위기를 몰고 올 줄은 몰랐다.
투표용지를 받고, 내가 원하는 후보를 적어야 하는데. 한명적어야 할것을 두명을 적었다. 그 당시 내 행동이 실수 였는지, 고의 였는지는 모르겠다. 위에선 심술이라고 언급했지만 사실 아직까지도 내가 왜 그날 그런행동을 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안난다.
용지수거가 끝나고, 일은 터졌다. 각자가 원하는 후보 이름 옆에 하나하나 바를정자 (正)가 채워져 가는데, 내 용지에서 두명이 이름이 나와버린것. 아이들은 '뭐야~'하며 유머러스하게 넘어갈수 있었던것 같은데, 담임선생님은 그러지 않으셨나보다.
상황을 인지하신 담임선생님이 다소 굳어진 얼굴로 아이들에게 소리쳤다 .
"이거 장난친 애 누구야!"
아무래도 나인것 같아, 우물쭈물 하며 나온 나오긴 했는데. 그닥 심각한 상황은 아닌것 같아 씨익하고 웃어넘기며 상황을 무마 하고 싶었다.
"투표가 장난이야?"
"네..?아니요.."
"투표는 장난이 아니야, 왜 한표한표가 소중한지를 몰라! 이 투표권이 어떤 의미인지를 몰라?"
"죄송합니다.."
나 이외에도 내 친구들 몇명이 '기권표'나 '후보에 없는 이름'을 투표한것이 밝혀졌고, 담임선생님은 진지한 어투로 우리를 호령하셨다.
"너희들이 지금까지 해온 반장선거 부터 시작해서, 앞으로 하게될 모든 투표들 하나하나가 소중한걸 알아라, 이 투표권이 어떻게 해서 얻게 된건지 그 의미를 잘 기억하고 가슴에 새겨라, 자칫 별거 아닌것 같아 보이는 이 투표용지 한장을 손에 쥐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이 맺혀있는지를"
당시 선생님은 전언은 정확히 기억해내기는 힘들기에 내가 다소 살을 붙힌 부분이 있지만 대략 이런의미 였던걸로 기억한다.
지금 20살이라는 성인의 신분으로서도 당시 그말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기는 힘들다. 많은 희생이 따르고, 많은 역경속에서 탄생한 소중한 권리라는걸 추상적으로 짐작할뿐 .
당시 선생님은 정치얘기도 많이 하셨는데, 지금 와서 되새겨 보면 좌파 였던걸로 기억한다. 그 선생이 좌파건 우파건은 중요치 않다. 중요한건 당시 그날의 불호령에 대해서 얻을수 있는 삶의 교훈을 최대한 얻어내는것 이다.
가끔은 부럽다.
흔들리는 세상의 풍파속에서도, 그것이 굳은 소나무건 나약한 풀잎 이건 자신의 철학과 모토를 굳건히 지켜낸채 고고한 세월을 유지해내는 사람들을 보면.
어쩌면 나는 나한테 득이 되는 편으로만 생각하며, 철새처럼 나의 철학을 바꿔버리는것에 능숙한지도 모른다.
서울대 석좌교수라고 해서 철새가 아닐까.
수능 만점자라고 해서 철새가 아닐까.
길거리에 널부러진 노숙자라고 해서 철새가 아닐까.
항상 따듯한 마음으로 우릴 보듬어 주시는 부모님이라고 해서 철새는 아닐까.
철새는 이동해야만 한다. 안 그러면 죽으니까,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고, 사계절이 순환되면서 세상의 수많은 철새들은 살기 위해서 이동하고 있다.
그런데
이 한가운데에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순수히 역경을 각오하는 몇마리 '비정상적인' 새가 있다
우린 너무나도 빠르게 겨울과 여름의 경계를 오고가는 나약한 철새다. 누런빛 논밭의 벼들이 바람에 따라 머리를 흔들듯, 우리의 철학과 상념은 너무나도 유동적인 액체와도 같다.
지금까지 우리가 일궈낸 민주주의는 철새가 아닌 새들의 노력으로 쌓아졌다. 봄여름가을겨울 상황이 변하고 시퍼런 현실이 목앞에 칼 처럼 들어와도, 굳건히 자리를 지킨채 죽음을 맞이한 많은 '새'들
세상에 철새가 없었더라면, 나와 같은 철새가 없었다라면, 세상은 좀더 아름다워졌을것 같다.
꾿꾿히 자리를 지키는 새들 위로 비상하며 , 하늘을 가로지르던 철새 였던 나는 어쩌면 진정한 새들의 가슴팍에 콕콕 가시를 쑤셔넣은지도 모른다.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 나 처럼 편하게 살아 편하게"
"난 내 자리를 지킬테요, 설령 사시미가 목앞에 덮쳐와도 나약한 목줄기로 사시미를 덮어버린채 검붉은 선혈을 흘리다 죽을테요"
우리는 노동자 전태일을 알고 있다. 전태일은 진정한 새이다. 어쩌면 우린 아직 인간이 되지 못한 이족보행의 철새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자신의 몸에 푸른 화염을 망토처럼 입으며, 자신의 철학을 지켜왔던 진정한 새 전태일의 희생은 좀더 풍요로운 우리 사회를 만들어 주었다.
최저시급, 최저시급, 최저시급, 근로기준법, 근로기준법, 열정페이
전태일이 철새였다면 들어보지도 못했을 고귀한 단어들이 우리의 입 밖에서 손쉽게 '툭'툭' 내뱉어 진다.
5일근무제, 휴식시간, 산재보험,
자신의 자리를 지키다 차디찬 바람에 죽어버린 몇 안되는 새들의 시체 위에, 우리는 '찍'하고 침을 뱉으며 또 다시 그 위를 비상한다. 살기위해 바둥거리는 철새처럼.
당신은 철새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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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걸 생각하게 하네요
지금 다시 보니 간간히 수정할부분이 ㅁ잇네염
반성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