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ctus ? [1110712] · MS 2021 (수정됨) · 쪽지

2024-02-05 13: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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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두 번째 수능 후기(독학재수)

게시글 주소: https://mission.orbi.kr/00067058709

몇 달만 지나면 더 까먹을 것 같아서 많이 늦었지만 써봅니다. 딱히 다른 수험생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래도 20살을 불태워본 기억이기에 나중에라도 읽어보고 싶어서 써보겠습니다.


재수를 하며 11달 동안 거의 매일 똑같은 하루를 보냈었는데, 수능 전날은 모든 걸 다 정리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도 계획했던 건 다 했습니다.

전날에 감이 죽어버리는 게 싫어서

모교에 들러 수험표를 받고

23수능 국어를 먼저 풀고, 수학 실모는 이로운 모의고사 시즌3 1,2회 두 개를 풀었습니다. 

국어는 역시나 몇 번 풀어봐서 쉬웠습니다.

수학은 수능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매일 수학 실모 2개씩 풀었어서 그냥 가벼운 느낌이었어요.

멘탈이 약한 편인데 멘탈이 약하다고 수능 전날 갑자기 감을 잃는 게 제겐 더 무서운 상황이었기에 그냥 늘 하던 대로 수학 공부하고 오답하고 했습니다.


영어는 키스에센스를 좀 풀고, 탐구는 실모 푸는 대신 개념만 좀 봤습니다.

제가 가장 후회되는 일이 탐구를 요약집만 보고 넘어간 일인데, 전날에 모의고사 두 개씩 풀고 들어가면 뭔가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같은 쓸데없는 생각이 좀 드네요.

영어도 풀모를 풀 걸 싶기도 하고요.

이미 다 끝나서 의미 없지만요.


저는 걱정이 많아 계획을 촘촘하게 세우는 성격입니다.

수능장에서 어떻게 할지 모든 경우의 수를 다 끄집어냈어요.

모의고사에서 샤프가 고장나 넋이 나가 샤프 고치느라 8분 넘게 써본 경험이 있어서 

갑작스러운 이벤트가 생겼을 때 대처를 정말 개못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당황했을 땐 어떻게 해야하는지, 문제 풀다가 막혔을 땐 어떻게 할 건지, 영어 듣기 하다가 비가 왔을 때 못듣고 넘어갔으면 어떻게 할 건지 정말 별 경우를 다 생각하면서 하루를 보냈던 것 같아요.


저녁엔 전날에 먹고 배가 안 아파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제육볶음을 먹으러 갔습니다.

이것도 담임선생님이 먹으라고 하셔서 먹었던 건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밥을 먹고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까만 서울의 저녁과 함께 학원으로 돌아갔습니다.


1월 2일부터 진짜 개고생을 했는데

끝이라니

이젠 끝이다 정말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러셀 나올 때 러셀 담임선생님이 마중나오셔서 짐 드는 거 도와주시고 응원해주셨었는데 저는 그게 엄청 도움이 됐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10월에 제가 존경했던 고등학교 수학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너가 재수를 한다면, 물론 재수를 안 하면 베스트긴 하겠지만, 분명 1등급이 뜰 거다."

저는 이 말 한 마디로 재수 수학공부를 버텼습니다.

정말 별 거 아닌데도요.

수학만큼은 정말 1등급 뜰 수 있다라는 자기확신을 갖고 시험장에 들어간 게 정말 큰 힘이었습니다.

러셀 담임선생님의 응원과 고3 수학 선생님의 응원이 정말 T발롬인 제게 엄청난 원동력이었어요.


집에 가선 긴장 풀려고 별 짓을 다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께 얼른 제발 일찍 주무시라고 하고

알람이 제대로 맞춰져 있는지 확인하고

따듯한 페퍼민트티도 한 잔 마시고

씻고 침대에 누워 늘 그랬듯이 수면유도음악을 켰습니다.


잠이 안 와요.

잠이 진짜 하나도 안 오고 미칠 노릇입니다.

그냥 눈을 감고 2시간이 지났습니다.

슬슬 좆됐다는 생각이 들고, 대가리도 박아보고 심호흡도 해보고 하는데 잠이 진짜 하나도 안 옵니다.

망할까봐 불안감 스위치 눌리니까 진짜 잠이 더 안 옵니다.

현역때랑은 비교도 안 되게 잠이 안 와서 그냥 냅다 팔굽혀펴기 지쳐서 쓰러질 때까지 했습니다.

겨우 잠들긴 했는데 N수...로 공부하시는 분들은 내가 3시간만 자고 시험장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경우까지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기껏 노력한 N년이 물거품이 되지 않으려면 내가 정말 피곤하고 체력 다 닳았어도 국 수 영 탐 5개 과목만큼은 눈 뜨고 뇌 깨운 상태로 있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다음날 수능 아침...

긴장도 긴장이고 졸렸습니다.

반년동안 매일 마셨던 아아를 한 잔 빨고 매일 먹었던 비요뜨 비슷한 걸 먹고

1년동안 입어 다 헤진 추리닝을 입었습니다.

날씨가 안 좋았던 것 같아요.

아버지 차를 타고 이동해서 차에서 내린 다음 아버지께 말씀드렸습니다.

갔다온다고

아디오스 하고 시험장으로 들어갔습니다.

계단 올라가는데 너무 졸렸어요...

아 개졸리다 진짜 이런 생각 하면서 고사장 도착해서 자리 찾아서 앉았는데 완전 창가 자리였습니다.

맨 왼쪽 뒤 끝이었는데 영어듣기 때 비온단 얘기가 있었어서 조금 빡쳐 긴장이 풀렸습니다.

예열 지문으로 23수 가져와서 좀 봤습니다.

기선제압이고 뭐고 나빼고 다 애기들만 있는 기분이고

작년에 같은 반이었던 것 같은 애도 앉아있고

누군지 알 것 같은 애도 앉아있고

예전 선배님도 앉아있고

원래 재수 때도 이렇게 아는 사람이 많나? 싶었습니다...


대망의 국어 1교시 시작

35번 언어문제를 봤는데

뭔가 이상했습니다.


이게 뭐임

처음 보는데 이딴 건


지문 읽는데 진짜 하나도 눈에 안 들어오고 이게 뭔데 싶고

더 미치겠는 건 원래 신경 쓰지도 않던 다른 사람이 페이지 넘기는 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정신병이 올 것 같아서 국평오... 국평오... 쟤네는 다 5등급이라 넘기는 거다... 생각하고 멘탈 잡고 짧은 문제만 다 푼다음 지문형으로 넘어와서 다시 풀었습니다.

언매 보통 13분 컷이었는데 20분까지 끌은 것 같습니다...

슬슬 후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수능 국어를 한 번 망해봤는데 또 망하는 거 아님? 싶어서 차분히 문학부터 읽었습니다.


푸는데 

너무 어려워요.

선지가 다 헷갈립니다.

이게 정답인 건 알겠는데 이유를 모르겠어요.

그냥 찍고 있는 거면 백퍼 또 삼수루트인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답이 될 수 있는 선지가 2개 혹은 3개가 보이고 왠지 걍 하나가 정답인 것 같은 그런 기묘하고 개빡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딱 보자마자

뭔 개소린가 싶었습니다.

이게 기출로 공부하면 그나마 괜찮을 것 같은데 현장에서 보니까 뭐지 싶고

글이 눈에 하나도 안 들어오는데 시간은 가고 있고

바로 옆쪽에 있는 감독관 자리에서 감독관이 수능 안내 책자를 정독하시는 겁니다.

종이 넘기는 소리가 들려요...

사락.. 사락... 잊는 것이 병이 아님. 근데 잊는 것이 병일 수도 있음 사락... 잊는 것이... 사락... 사락... 뭐... 잊는 게 뭔데...

하고 읽다가 눈물이 날 것 같아서 걍 당돌하게 문제만 읽고 발췌독 했습니다.

원래 언매+문학해서 아무리 길어도 40분 컷을 냈는데

시계를 보니까 80분 중 30분이 남았다는 겁니다.

ㅋㅋ

문학까지 끝냈는데 30분 남았다니...

망했단 생각만 들었습니다.

독서를 어떻게 풀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일단 다시 돌아갈 시간은 없는 게 확실해서

지문을 읽고

문제를 풀면서 다시 지문으로 돌아갈 생각도 안 했습니다.

그냥 달렸습니다 미친듯이

근데 또 이상하리만큼 독서가 쉬운 느낌이고 뭔가 잘못 걸렸단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허겁지겁 수험표 뒷장에 시험지에 체크해둔 답을 쭉 적고 오엠알에 그대로 마킹했습니다.

시간 안에 끝내서 다행이다 싶었는데

제가 23년에 푼 이감 상상 바탕 한수 기출 중 가장 어려운 국어 시험지였습니다.

그래도 채점하니까 오히려 제일 어려웠던 문학에서는 1문제 나가고 나머지는 다 비문학이랑 언매에서 나갔습니다.

채점하기 전까진 정말 모르는 거니까 국어 망했다고 생각이 들어도 끝까지 멘탈 붙잡는 게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쉬는 시간엔 간단히 스트레칭 하고 화장실 가서 줄서있다가 05년생이 앞에 서서 기지개 펴다가 제 머리를 쳐서 기분이 안 좋았습니다.

죄송하다곤 했는데 수능날엔 그냥 좀 예민했어요...

손 씻고 앉아서 수학은 예열을 따로 가져온 게 없어서 탐구 봤습니다.


수학은 이상하게 또 쉬운 느낌이었습니다.

22 28 말고는 어려운 문제도 딱히 없고 결과적으로 시험장에서 못푼 문제는 28번이었습니다.

22번은 풀었다고 착각했었고

그냥 차분하게 1번부터 쭉 풀되 모르는 문제에서 막히면 바로 넘어갔습니다.

이게 답인 게 맞는데 정말 맞나? 싶은 문제도 있었던 것 같아요. 21번이었나..??

30번과 15번이 의외로 쉬워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인상깊었던 것만 몇 개 써보자면

12번?

이게 최댓값인 것 같은 것만 계산했는데

나중에 검토해야지 하고 넘어갔습니다.


15번 같은 경우 그냥 써봤어요...

어떻게 풀었는지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지만 대충 기억 살려서 써보자면

홀짝이니까 2k-1, 2k로 나눠서 생각했던 것 같고

최초항 a로 두고 차분히 경우 나눠서 되는 경우만 생각해보는 길도 찾아봤고

an 6번째 항 7번째 항을 더했을 때 3이 나오는 경우가 한정적이겠단 생각까지 했습니다

세 번째 생각까지 하니까 아 이것만 계산하면 되겠다 싶어서 그때부턴 쭉 계산?이라고 하기에도 뭐한 나열을 하고 답내고 넘어갔습니다.


19번이 좀 쫄렸던 것 같아요.

3점치고 비주얼이ㅋㅋㅋ 아주 조금만 꼬았으면 4점급이었을 것 같아요.


미적분은 28번 빼고는 굳이 N제 안 풀어도 기출로만 1 뜰 수도 있을 것 같단 생각을 했습니다.

미적분 N제는 솔직히 재수때도 풀면서 과하단 생각을 너무 많이 했었어요.

그래서 28번 틀린 거겠지만... 쓸데없는 미련은 버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기출의 중요성을 실감했던 것 같아요.

저보다 수학 잘 하는 사람은 널렸겠지만... 객관적으로 기출만 물고 빨아도 29 30은 기출로 충분히 대비가 됐을 것 같습니다.


29번도 9모 급은 아니지만 적당히 29번급으로 쉬웠고...

경우가 두 가지밖에 없어서 해보고 아 이거 두번째 경우네 하고 계산해서 답냈습니다.


30번도 비주얼은 좀 그렇지만 자세히 보면 친절한 문제였어요. 풀 수 있는 사람은 많지만 많은 것에 비해 현장에서 맞힌 사람은 적은 것 같은 문제네요.


감독관이 다리 떤 것만 빼면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이때까진 국어는 3 수학은 백분위 98 정도로 예상했습니다.


밥은 어머니가 싸주신 소고기 주먹밥이랑 다 까서 통에 담겨있는 귤을 먹었습니다.

먹고 양치하고...

친구랑 인사하고...

탐구 요약집 보다가 영어 예열했습니다.


영어 보는데 듣기 시간에 정말 비가 와서 빡쳤습니다.

음질도 별로 안 좋았던 상황이었고

그래도 그냥 어찌저찌 다 풀었습니다.

시간도 남았고... 모르는 문제도 몇 문제 없어서 1 뜨겠지?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탐구 풀면서 쉽다고 생각했습니다.

탐구는 망했으니 말을 아끼겠습니다.

탐구는 특히 등급이 수능날 결정나는 것 같습니다.


제2외국어 신청했는데 안 봤습니다.

안 본 걸 후회합니다.

그냥 보세요...

신청하질 말든지 신청했음 보든지 하세요

애들이 떠드는 거 들어주는 게 정신적으로 고통이었습니다.

쉽지 않았냐?

이러는 걸 듣고 있어야 해요...


끝나고 친구가 우산을 들고 데리러 와줬습니다.

어머니 아버지도 데리러 오셔서 친구랑 같이 차타고 술마시러 갔어요.

차타서 국어 수학 영어만 채점했었는데

국어 80점대...

그래도 그냥 채점하고

영어 89점

이건 정말 빡쳤습니다.

89점 88점 점수가 정말 화나는 점수 같아요.

물론 저는 공부 제대로 안 한 제 탓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열심히 했던 1년이 있기에 속상한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술마시러 간 식당에 또 반수한 친구가 앉아있었습니다.

테이블이 또 바로 옆에 있어서 엄청 떠들고

술 마시고

고량주를 그냥 생으로 컵에 따라 마시고

병에 마시고

꼴아서 누웠습니다.

친구가 수험표 갖고 가서 한국사 채점해줬어요...

43점이었나 45점이었나 되게 잘 봐서 기뻐했던 것 같은데 취해서 정말 기억이 하나도 나질 않습니다.

역대 한국사 커리어 하이


탐구를 채점하는데 친구가 그러는 겁니다.

너 이거 홀수형으로 잘못 채점했나봐

잠이 확깼습니다.


탐구는 홀짝이 없으니까요


점수를 듣고 울었는데

또 취해서 점수가 기억이 안 나서 여튼... 그냥 망했던 것만 알았습니다.


음...

그러고 수험표를 잃어버렸습니다.

친구가 말하길 제가 친구한테서 수험표 뺏었다는데 기억에 없고

코노까지 갔다는데 코노를 간 기억도 없고

어떤 방법을 통해 집까지 갔는지도 모르겠고

주머니를 뒤져봐도 수험표가 없고

가채점 성적도 기억이 안 나고

친구는 자느라 전화도 안 받고

ㅋㅋㅋ

이걸 말하면 집에서 쫓겨날 것 같아서 4시에 술집 연대서 앞에서 대기탔습니다.

재수학원 담임선생님이 가채점 성적을 물어보시는데 모르겠는 거예요...

아는 것만 말씀드리고 술집에 갔는데

다행히

정말 다행히도 수험표를 따로 챙겨두셨어서

감사하다고 거듭 고개를 숙이고 가게를 나왔습니다.

저처럼 살지 마세요

심장 떨어질 뻔 했습니다...


수능 끝난 다음날엔 습관적으로 6시에 일어나서 문제집 실모 싹다 갖다 버리고

친구랑 한식집 가서 밥먹고

친구들 불러다가 집에서 귤먹고

읽고 싶었던 책 읽고

술집가서 잃어버린 수험표 찾고

가채점 입력하고

그런 하루를 보냈습니다.

좀 행복했던 것 같아요.


끝입니다!

결과적으로는 국어 1(백분위 96) 수학 1(백분위 99) 영어 2(89점) 탐구 개존망

이라 아쉬움은 남지만 잘 싸웠다고 생각합니다.

메디컬 목표로 바라보고 재수했던 거긴 하지만...

제 노력이 부족했던 거겠죠.

그래도 후회하진 않습니다.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8시까지 학원에 등원하여 공부를 하고, 밤 10시에 하원을 하고, 스터디 플랜은 꼬박꼬박 지키려고 했고, 수험생활 중에 과외 해서 용돈벌이도 하고, 일요일에도 학원 나가고, 사람은 거의 보지도 못한채 공부만 했던 1년이 나름 좋은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힘들었어도 사람인지라 결국엔 다 까먹어요.

나중엔 결과만이 남습니다.

치열하게 살아보는 게 본인한테 떳떳해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게 재수 생활의 큰 경험이자 가치라고 믿고 있습니다.

본인의 꿈을 위해 하는 사람, 그냥 하는 사람, 굳이 수험생의 길을 걷지 않더라도 자신을 위해 열심히 사는 사람 모두 멋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수험생 분들을 응원합니다!

남은 10개월 한 번 치열하게 파이팅있게 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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