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사로 간다 [65470] · MS 2004 · 쪽지

2010-03-10 03:19:26
조회수 2,269

이과 공부를 하고 싶은데...제가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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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라끄리님
전 24세에 경인교대에 다니고 있는 남성입니다.
학교라고 해봤자 올해 입학을 했구요. 게다가 군미필입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건지...제 심정이 지금 참으로 처참합니다.
글이 좀 길어질지도 모르겠는데 최대한 줄여서 말씀드릴테니 읽어주신다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원래 저는 고1때까지만해도 이과지망이었습니다.
나름 수학에 관심도 있었고 적성 등을 고려해 볼 때 이과가 맞는다고 생각했었지요.
그런데 고1이 끝날 쯤에 우연히 경제경시대회에 참가하게 되서 경제공부를 조금 했었습니다.
하다보니 상당히 재미있더라구요. 경제 과목이란게 수학하고도 관련이 많고...
그래서 경제학을 배우고자 선생님께 부탁드려 문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고교 시절을 보내고 성균관대 사회과학대학에 합격을 했었는데 왠지 저스스로는 납득을 하지 못할 결과여서 재수를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대학을 붙여놓고 재수를 한다는 안이한 생각으론 허락할 수 없다 라는 말씀을 하셔서 결국 생재수를 했었죠.
재수 초반에는 나름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왠지 성에 안차는 것 같아서 여름즈음에 강남종로 특별반에 들어가서 공부를 했습니다.
공부 잘하는 친구들 옆에서 공부를 하려니 나름 긴장이 되더군요.
그래서 아침부터 새벽까지 정말로 열심히 공부만 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체력이 약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2달정도 하니깐 몸에 무리가 와서 결국 코피를 쏟고 쓰러졌습니다.
이틀정도 누워있다가 도저히 견딜수가 없어서 다시 대전에 있는 집으로 내려와서 근처 학원을 등록했습니다.
그런데 왠지 그때부터 공부가 안되더군요.
공부를 하다가 쓰러졌던 경험때문인지 공부가 잘 안되더라구요.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학원 같은 반에 제 이상형을 만나서 짝사랑을 하게 되었습니다.
첫눈에 반할 정도였는지라 정말 쉽게 뿌리칠 수가 없더라구요.
그때는 제 의지력이 정말 너무나도 빈약하고 여러가지로 황폐화된 상태였지요.
결국 수능을 처참하게 말아먹었습니다.

결국 할 수 없이 삼수를 결심했는데 이때부터 다시 제 어릴적부터 희망해온 이과 공부를 하고 싶었습니다.
경제학에 대한 관심도 식기 시작했고, 의대에 진학하기를 소망했지만 그때는 삼수가 마지막일 거란 생각에 차마 쉽게 문과에서 이과로 바꾸는 결정을 하기 힘들더라구요.
어쩔수없이 그냥 문과로 계속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고 노량진에서 생활을 했습니다.
이때는 저 스스로도 객관적으로 열심히 했다고 생각합니다.
1년동안 정말 홀로 외로이 공부만 했었고 평가원이나 모의고사 시험을 보면 정말 긍정적인 결과가 나왔었어요.
수능을 보기 전날 어머니께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 같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수능 날 언어와 수리를 푸는데 신이 나더군요.
당시엔 오늘은 축제의 날이 될 것이다 라는 확신이 차 있었습니다.
그렇게 수능을 보는데 외국어 시험에서 마킹을 실수하고 말았습니다.
장문독해에서 49, 50번 지문을 OMR에 46, 47에다 쓰고 46, 47, 48번 지문을 그 뒤에다 쓴거죠.
이걸 시험이 끝날 즈음 뒤늦게 깨닫고 책상에 넣어 둔 수정테이프를 찾았으나 급해서 그런지 찾기 힘들어서 감독 선생님께 수정테이프를 요청했더니 선생님도 다른 학생한테 빌려줬었는지 어디있는지 찾으시더군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서야 수정테이프를 막 받으려는데 종이 쳤습니다.
바로 걷어가더군요...
그래서 제가 수정테이프를 요청하고나서 받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려서 수정을 못했는데 이부분은 참작을 해주셔서 고칠 시간정도는 주셔야 하는것 아니냐고 말씀드렸더니 어쩔수 없다고 하시더군요.
납득이 안돼서 교무실까지 따라가 항의를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렇게 5문제를 날려 먹었습니다.
게다가 그 해는 등급제였는데 말입니다.
힘이 다 빠지고 눈물이 나면서 어질어질했고 학교 뒤로 묘지들이 보였죠.
아 이래서 사람들이 수능 도중에 자살을 하는 거구나 싶더군요.
충격이 너무 커 사탐을 보는데 윤리와 국사를 어떻게 보는지도 모르고 풀다가 이러면 안되겠다 싶어서 나머지 경제, 사문, 제2외국어까지는 그래도 최선을 다해 풀었습니다.

집에 와서 채점을 하는데 언어는 한개 틀리고 수리는 다맞고 했는데 하나도 기쁘지가 않더라구요.
외국어는 5문제가 잘못 쓴게 정답이랑 겹치는 게 없어서 모두 틀렸고 그외에 한개를 더틀려서 88점인가를 맞았습니다.
총점이 외국어만 잘 마킹했다고 쳤을 때 윤리와 국사를 제대로 못봤지만 480점 중반대가 나왔었고 마킹 실수를 감안했을 때에는 470점대가 나왔습니다.
문제는 그 해가 등급제였다는 거였죠.
등급이 113 1311 1 이렇게 나왔었는데 저 등급으로 갈만한 대학 중 납득할 만한 대학이 없더라구요.
게다가 원서를 쓰는데 의욕이 안나서 대충 써버렸더니 처참히 3패를 해서 4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부터 정말로 의욕이 하나도 안나더군요.
지금이라도 이과로 옮길까 고민도 했지만 자신이 없었구요.
결국 4수를 할땐 공부다운 공부는 하나도 못하고 망했어요.
4수가 끝나고 신경외과를 갔더니 우울증에 심한 강박장애가 있다고 하더라구요.
그게 오랜 수험 생활을 거치며 더 심해진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5수도 결국 마찬가지였습니다.
군대문제도 신경쓰였고 우울하기도 했고 공부가 하나도 안잡히더라구요.
성격장애를 앓고 있다는 게 일종의 방어기제의 역할도 했습니다.
나중에는 수능을 못봐도 별로 감흥이 없어지기까지 하더군요.

어쩔 수 없이 어머님의 말씀에 따라 교대를 지원해서 현재 경인교대에 입학을 했습니다.
가족에게 죄를 짓는 심정이라서 정말 관심도 없고 적성도 안맞는 교대를 오니까 제가 너무 한심하더라구요.

많은 고민과 반성을 했었는데 결론은 수능을 한번 더 보는 것이엇습니다.
이과로 전향을 해서요.
한번 정말로 제가 간절히 원하는 삶을 위해 다시 한번 노력을 해보고 싶습니다.

문제는 장애가 너무 많다는 겁니다.

일단 이과로 옮길려니 배워야 할 게 너무 많아 부담스럽습니다.
언어 외국어는 그렇다쳐도 수리와 과탐은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조차 갈피를 못잡고 있는 형편입니다.
수2와 미적은 하나도 모르는 상태고 과탐은 말할것도 없지요.
의대 혹은 치대를 가고 싶은데 학교를 다니면서(최소한으로 학점을 신청하긴 했습니다만) 해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요.
2학기에 휴학을 하자니 바로 영장이 나올 것 같아서 엄두도 안나구요.

그리고 군대문제입니다.
제가 짝눈으로 3급을 받았는데 요즘 눈이 더 안좋아져서 공익으로 뺄 수 있겠다 싶어서 알아봤는데 작년까지만해도 상당히 가능성이 있었는데 얼마전에 등급 기준 개정이 되어서 4급으로 빼는 게 더욱 힘들게 됐어요. 공익이면 차라리 목표를 길게 한 3년 잡고 공익 근무를 다니면서 공부를 할까 생각을 했는데 현역으로 가야 할 것 같아서 걱정이 됩니다.

또 이번에 아까 언급을 했던 재수할 때 짝사랑했던 여자애를 만나게 됐어요.
대학에 와보니 저희학교 같은 과더군요.
교대에 갔다는 말만 들었지 이렇게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정말로 환호성을 질렀겠지만 제 처지가 처지인지라 오히려 신경만 잔뜩 뺏길까 걱정이 됩니다.
제가 재수를 할 때 3개월 정도만 알게 되었고 변변한 얘기조차 나눠본 적이 없지만 3수 4수 5수를 해오면서도 여태까지 계속 자주 생각이 났었고 그때마다 아련한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좋아했던 아이입니다.
지금은 같은 과 선배가 되었네요.
어떻게 이겨내어 공부를 할 수 있을지 너무 힘듭니다.

그 밖에 집안 문제, 돈문제, 정신적 장애 등 여러 문제가 있는데 어떻게 헤쳐나아가야 할 지 참 힘드네요.
그러던 중 재수하던 시절 감명깊게 읽었던 라끄리님의 합격 수기책이 생각이 나서 다시 읽어봤더니 저보다 힘든 상황속에서 저와는 달리 라끄리님은 성공을 하신 걸 보고 이렇게 조언이라도 구할까 하여 글을 올려봅니다.

글이 참 길고 라끄리님께서 바쁘시다는 건 잘 알고 있지만 짧게나마 공부 방법이라든지 학교문제 등에 관해 조언을 구할 수 있다면 참으로 감사드리겠습니다.

한참동안 힘들어하고 고민을 계속해보다가 이렇게 글까지 남기니 벌써 새벽 3시네요;;
그럼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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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acri · 2 · 10/03/16 14:14 · MS 2002

    아이고...
    삼수부터는 정말 인생이 제대로 꼬여버렸군요.
    너무 복잡하게 꼬여버려서 어디서부터 매듭을 풀어야 할지 알기조차 힘듭니다.

    제 생각에 해결책은 이렇습니다.
    1) 우울증과 OCD 치료는 정기적으로 정신과 의원을 다니면서 받으세요. 약도 수험생활 내내 드세요.
    2) 제가 군 판정 기준은 잘 모르지만 우울증/OCD로 4급 판정을 받을 수 있는지 알아 보시고, 가능하다면 받으세요. 받게 된다면 길게 보고 계획 대로 공익근무 하면서 다시 수험에 도전해 보세요.
    3) 4급을 못 받을 경우, 군 면제 때문에 휴학은 어려울 것 같고, 학교를 다니면서 공부를 해야 하는데, 최소학점 신청을 했다고 해도 이과 쪽 시험은 무리입니다. 시험을 볼 수는 있겠지만 탐구 쪽에서 좋은 등급을 못 받아서 원하는 학교에 진학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큽니다.
    4) 워낙 오래 공부를 해서 아직 수능에 감이 있을 것입니다. 특히 08 때 좋은 점수를 받아 본 경험이 있어서, 그때로 돌아가기가 많이 어렵지는 않을 것입니다. 서울대 목표로 문과로 도전해서, 합격하면, 본인도 만족하게 될 것입니다.
    5) 연애는 여러 상황을 고려해 볼 때 현실적으로 너무 어려울 것 같고, 그냥 가슴에 묻어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누구나 그 정도 상처는 있는 것이니까 너무 운이 없다고 생각하진 마세요.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시고 문과로 서울대 합격하시고, (공익 안 나오면) 1학년 때 깨끗하게 군대 갔다 오시고, 새 삶을 시작해 보시기 바랍니다.
    제 생각에는 서울대만 합격해도 집안 문제나 돈 문제 같은 문제들은 완전히는 아니라도 어느 정도 해결이 될 것 같아요.